신분증에 공식적으로 적힌 이름이 본인인증에서 거부된 이유를 시스템의 기준에서 되짚어본 기록
신분증에는 분명 내 이름이 있습니다

은행 앱에서 계좌를 개설하며 외국인등록증에 적힌 한글 이름을 입력합니다. 그런데 본인 확인에 실패합니다. 2019년 4월 11일부터 외국국적동포와 재한화교는 외국인등록증 등에 영문 이름과 한글 이름을 함께 적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이름과 신분증의 이름이 달라 생기던 불편을 줄이기 위한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신분증이 바뀌었다고 모든 시스템이 함께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글 이름이 병기돼 있어도 실명확인에는 여전히 영문 이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신분증에는 분명 내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으로는 나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입력창의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해결 방법도 간단해 보였습니다. 어떤 이름을 입력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주거나, 실패했을 때 이유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사용자가 영문 이름을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만 알면 적어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남습니다. 사용자는 이미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에 적힌 자기 이름을 입력했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을 통과하려면 같은 신분증에서 다른 이름을 찾아 다시 입력해야 합니다.

안내 문구를 고치면 실패는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왜 자기 이름을 두고 다른 이름을 입력해야 하는지는 그대로입니다. 좋은 안내 문구는 배제를 덜 아프게 만듭니다. 하지만 배제 자체를 없애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이름보다 두 시스템 사이에 있었습니다

Microsoft는 포용적 디자인에서 배제를 사람과 경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일치로 설명합니다. 이 사례가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용자가 잘못된 이름을 입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분증에서는 공식적으로 병기된 이름이 실명확인 시스템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실명확인 시스템은 한 사람에게 공식 이름이 하나라고 가정했고, 두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은 그 가정 밖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2020년 6월 8일부터 관련 시스템이 정비되면서 병기된 한글 이름으로도 실명확인이 가능해졌습니다. 사용자를 시스템에 맞추는 대신, 시스템이 이미 신분증에 적힌 이름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어디까지 봐야 할까

어떤 이름을 신분증에 기록하고 실명확인에 사용할지는 디자이너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행정과 정책, 기술 시스템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의 결과는 결국 사용자가 이름을 입력하고 거부당하는 하나의 화면에서 나타납니다.
정책을 바꿀 권한이 없어도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실패가 누구에게,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데이터로 모으고, 그것을 정책과 시스템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근거로 만드는 일입니다. 배제가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은 화면이고, 그 화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자기 이름으로 본인인증을 할 수 없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은 어떤 사람을 기본값으로 삼고, 누구를 예외로 처리하고 있을까요?
#
이름
#
시스템 사고